‘똠방각하’. 농민 소설가 최기인의 소설을 각색한 코믹드라마의 제목이다. 지난 1990년 당시 드라마 방영 시간에는 거리가 한산했고, 각 가정의 수도 사용이 줄었으며, 연일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는 소식이 들렸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다시금 상기된다.
드라마는 작은 마을에서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리는 주인공을 통해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무능력했던 주인공(연규진 분)은 직책이 주어지자, 보란 듯이 이를 완장에 새겨 팔뚝에 차고서는 온 동네를 다니며 위세를 뽐냈다.
혹여 누가 몰라주면 완장을 가리키며 자기가 누구라는 걸 과시했고, 자신이 하려는 일이나 자신의 의견에 반대라도 하려 들면 발작버튼이 눌린 듯 거품을 물고 날뛰었다.
이내 잠재돼 있던 그의 본능이, 차츰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수록 이웃들에게 크고 작은 피해를 입혔다. 드라마는 완장만 믿고 까불던 똠방각하가 이웃들에게 몰매를 맞고 내쳐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주인공의 포악의 정도가 워낙 심하다 보니,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대중들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거나, 상식 이하의 행동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을 두고 ‘똠방각하’, ‘똠방’이라고 불렀다. 꽤나 오랜 시간 유행어이자, 특정인(세력)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운위됐다.
드라마 종영 이후 무려 3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새로운 똠방각하들의 출현이 끊임없이 목격된다. 완장병(病)에 걸렸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그들은 자기의 신념이, 자신의 말이나 행동은 언제나 옳다는 정신승리에 취해있다.
일례로 선거와 공천과정에 깊이 개입해 온 정치브로커,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하는 실험성 판결로 대혼란을 초래한 법관, 전무후무하게 최고 권력자에게만 유리한 결정을 내려준 검찰 수장 등이 연일 톱뉴스를 장식하며 국민적 똠방각하 대열에 합류했다.
동두천과 연천도 예외는 아니다. ▲주민과 직원에게 갑질·막말을 일삼는 지방의원 ▲공무원 채용시스템 따위는 안중에 없는 지방의원 ▲자신과 관계된 법인에 유리한 조례를 만들어 준 지방의원 ▲근거 없이 경찰 수사 결과를 불신하는 지방의원 ▲징계 처분을 받고도 의정활동비 등은 감액 없이 받은 지방의원 ▲사업자들과 결탁해 공무원에게 계약을 압박하는 지방의원 ▲이들의 몰상식에 동조함을 넘어 홍위병이길 자처하는 공무원 등이 지역의 똠방각하로 대중들과 공직자들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특히나 지역 똠방들의 공통점은 이웃·동료의 불편함과 어려움, 고통과 불쾌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똠방들이 바라보는 것은 딱 하나, ‘완장에 대한 집착’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역 똠방들은 자신들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조직과 지역사회를 망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최선이며, 가장 정의롭고 합리적인 선택이라 말한다. 이쯤 되니 주민과 공직자들이 ‘최악, 궤변을 넘어선 망상’이라 비웃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된다.
지금 당장 지역 똠방들이 누리고, 꿈꾸며, 지속되길 바라는 권력은 명확한 기한이 정해져 있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법이다.
존경도 스스로 만들고 외면도 스스로 만들어진다. 당장의 완장 질에 취해 자신의 망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과 지역에 피해를 입힌다면 주민과 공직자들이 앞에서 웃음 짓고 뒤돌아서 침 뱉는 현실은 임기 내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아쉬울 때 고개 숙이다 완장만 차면 돌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언젠가 내려놓을 완장을 생각하고 변함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완장이 주어져야 조직과 지역이 발전하며, 늘상 불합리·불공평에 신음해 온 경기 북부 주민들의 삶이 나아진다.
그리고 그것이 공천과 인사가 시스템에 의해 엄정하게 작동해야 하는, 유권자가 올바른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공직자가 상급자에게 충언(忠言)을 해야 하는 이유다.
단언컨대 우리 지역의 똠방들이 하루아침에 각성할 가능성은 0%다. 그래서 더 씁쓸한 봄날이다. 아! 위에서 나열한 지역 똠방들이 누군지 궁금하신가? 음… 아마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그 사람(들)이 맞을 것이다. 거의 확실하게.